저는 이 책에 관심도 없었는데 집에 2권 있었습니다.
출간이 2005년도인데요.
이 때가 제가 졸업반일때 쯤, 개인적으로는 조금 정신없고 마음에 여유가 하나도 없을 때였을거예요. 개인 사정으로 휴학도 했고요.
처음에는 중학교 동창이 선물줬는데 그때는 고맙다고 받고서 시집같아서 나중에 읽어봐야지 하고 책장에 꽂아두고 사는게 바빠 잊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외국에도 잠깐 나갔다오고 또 이후에는 취업을 해야 했고, 취업해서도 미친 야근에 바쁜 일의 연속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몇 년 뒤에 지인이 만날때 또 이 책을 선물 주더라고요.
제 주변에는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이 책이 또 생각났죠.
그제서야 이 책이 그렇게 좋나? 하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죠.
삶에 치일때는 이게 뭔가 싶었던 책이 나이드니까 진가가 보이더라고.
저는 20대랑 30대 초반까지만해도 꽃 사진, 풍경 사진 카메라에 없었습니다.
여행 잘 안(못) 갔습니다.
회사 집 회사 집의 전형으로서, 해외 여행도 안 가던 1인입니다.
그런 제가 약간은 바뀌었죠.
소위 말해, 어떤 계기로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한 심한 현타가 왔던 것 같아요.
왜, 무얼 위해 나는 이렇게도 무미건조하게 살았던가.
여유있게 살아도 누가 뭐라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아도 회사에서 잘리면 끝인 것을
무슨 부귀영화가 있다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짓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지
그때, 아, 처음으로 혼자 여행이 주는 삶의 쉼표를 느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쯤이네요.
카메라에 꽃 사진이 넘치고 지나가는 길에 핀 들꽃도 이렇게 예쁘다며 감탄하기 시작합니다. 이 증상은 30대 후반쯤부터 나타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생각하죠.
철 없던 내 주위에 생각 깊고 철 있던 지인들이 많았구나.
분명 자신들이 읽어보고 좋아서 저에게 줬겠죠. 이 책을.
끌림
작가가 여행은 결국 무언가에 끌려 떠나는 과장이라고 했죠.
내가 너에게 끌리는 것에 구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듯,
여행에 끌릴때가 되니 자연스럽게 이 책의 감정이 눈에 들어오게 되더라는.
끌림이 여행 에세이 시장에 가지는 의미는 큽니다.
국내 여행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시조새입니다.
예전 여행책자들이 사실만을 전달했다면 이 여행서는 감정을 전달한 장르니까요.
저는 시장을 개척한 원조는 원조로서 굉장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블로그에 리뷰 써두면서 좋아서 메모해 둔 구절이 있는데 여기로 옮겨볼께요.
청춘을 가만 두라.
흘러가는 대로.
혹은 그냥 닥치는 그대로.
청춘에 있어서만큼 사용법이란 없다. 파도처럼 닥치면 온 몸으로 받을 것이며 비갠 뒤의 푸른 하늘처럼 눈이 시리면 그냥 거기다 온 몸을 푹 담그면 그만이다.
주저하면 청춘이 아니다. 생각의 벽 안 쪽에 갇혀 지내는 것도 청춘이 아니다. 괜히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남을 탓하는 것도 청춘의 임무가 아니다. 청춘은 운동장이다. 눈길 줄 데가 많은 변화가이며 마음 들떠 어쩔 줄 모르는 소풍날이다.
가끔, 나의 청춘을 돌아볼 때마다 여전히 가슴 두근거리는 이유는 아무거나 낙서를 해도 괜찮은 도화지, 그것도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도화지가 떠올려져서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질러야 할지를 모르는 하얀 도화지 앞에서의 두근거림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감정이며 동시에 인생에 있어 몇 번 안되는 기회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청춘은 방해받는 것 투성이다. '하지말라'는 말들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 함으로 느낄 수도,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야 하는 것, 만나야 하는 것, 사력을 다해 가져야 하는 것, 그래서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청춘도 가볍게 여기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가볍게 소비되고 말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사랑스러운 것인지를 모른다.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과 내가 인연으로 스치지 못했던 것도 그 한 뼘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춘의 모두는 한 뼘과 연관되어 있으며 겨우, 그 한 뼘 때문에 대부분의 결과는 좋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모든 청춘은 실패했다.
세상 선배들의 모든 청춘이 그랬다.
하지만 그건 청춘이 실패를 겪을까봐 아무것도 저질러보지 못한 이들의 후회일 뿐. 실패를 겪으면 창피할까봐, 그 실패로 인해 또 다시 막막해질까봐 매순간 뒷걸음질을 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무엇이든 어느때건 가능한 일 투성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었던가를 세상 모든 선배들은 몰랐다.
그래서 선배들은 바보처럼 중얼거린다. '십 년만 젊었더라면...십 년 전으로 돌이킬 수 있다면...' 하지만 그 십년은 되돌려지지도 않을뿐더러 만약 이미 아무렇게나 지나쳐버린 십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그 청춘을 다시 성공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청춘에 있어서 한번 실패한 사람은 영원히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예민하되 청춘은 복잡하지 않다. 그렇다고 대단하지도 않다. 그냥 언뜻언뜻 휩쓸려가는 것이며, 중단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것이다. 청춘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대신 할 수 없는 것이다.
울 일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넘어지는 일도, 억울한 일도 많을 것이다. 청춘이라는 이유로 금세 딛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것이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 앞에 서서 이 문 안이 무엇이 있을지,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써버리면 안 된다. 그냥 설렘의 기운으로 힘껏 문을 열면 된다. 그 때 쏟아지는 봄빛과 봄 기운과 봄 햇살을 양팔 벌려 힘껏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청춘이다.
그래서 청춘을 봄이라 한다.
그리고 7년 후 다시 낸 신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 책의 제목은 읽자마자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바람이 부는데 당신 좋데요.
저 줄바꿈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기분입니다.
바람이 불어왔어요.
이 보편적인 자연의 움직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생각을 움직였는지 알 길 없지만,
그 때 여행지에 나타난 풍경일 수도 있는
아니면 문득 떠오른 스친 인연일 수도 있는
아니면 케케묵은 감정일 수도 있는
그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 같잖아요.
작가는 짧은 두 문장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수한 많은 단어를 선물하죠.
바람이 분다 네가 좋다는 지극히 잔잔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이 책 제목만 봐도 이 책을 알 수 있는, 미쳐버린 감각의 책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요즘 세대분들은 텍스트가 싫고
여행 유튜버가 세계 어디든 데려다주고 대신 체험해주는 시대지만
가끔은 이런 여행 산문집에서
영상이 주지 못하는 텍스트의 여백의 미를 느껴보는 것도 추천드려봅니다.
어차피 누군가 읽으라고 말해도 눈에 안 들어오면 소용없죠. 저처럼요. ㅎ
끌릴떄가 되면 저절로 끌려서 읽게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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